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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요약
중국 제약사 아케소는 PD-1이라는 면역항암제를 설계부터 임상시험, 미국 승인, 판매까지 혼자 다 해냈다. PD-1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하도록 브레이크를 푸는 약인데, 전 세계 항암제 판매 1위가 바로 이 PD-1 계열이다. 중국은 이 핵심 기술을 이제 미국 승인 없이도 독자적으로 만들어 팔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차세대 항암제다. 지금 글로벌 제약사들이 사들이는 신기술 10건 중 7건이 중국산이다. 항암제 생산시설도 중국이 장악해서 미국·유럽 회사들까지 중국 공장에 의존한다. 중국 바이오 논문은 세계 1위로 올라섰고, 미국에서 일하던 고급 인력까지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도 이미 기술 수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한다. 중국과 경쟁할 것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지를 걱정해야 한다.
Chapter 1. 나의 생각
개인의 모노드라마에서 국가의 대서사로: 중국 신약 개발의 변곡점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정지한 순간에 필자는 한 인간의 절박함이 어떻게 ‘신약 개발’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까지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뉴스를 접했다[1], [2].
중국 윈난성 쿠밍시에 사는 쉬 웨이(Xu Wei)는 두 살 아들 하오양(Haoyang)이 체내 구리를 흡수하지 못하는 멘케스 증후군(Menkes Syndrome)을 진단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팬데믹의 여파로 국경이 봉쇄되어 치료제를 구할 방법이 모두 차단된 채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몇 달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집 한켠을 임시 실험실로 바꾸고 600편이 넘는 논문을 독학하며 구리-히스티딘 복합체를 직접 제조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 학업을 멈췄던 평범한 회사원이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연구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6주 만에 약물을 합성했고, 토끼를 이용한 간이 실험과 자기 자신에게의 투여로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인한 뒤 아들에게 투약했다. 투여 2주 만에 아이의 혈청 구리 농도가 정상 범위로 회복되었다. 정식 의미의 신약 개발이라기보다 치료제의 ‘사적 재현’에 가깝지만, 한 개인의 의지가 수많은 장벽을 넘어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하나의 모노드라마로 충분했다.
https://www.youtube.com/embed/njL4hBPb2Js?feature=oembed쉬 웨이(Xu Wei)의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영상 (나오지 않는다면 여기를 클릭)
흥미로운 대목은 그 이후다. 코로나의 진원지라는 이유로 중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차가웠음에도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중국이지만 정말 대단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나온 특정 성과가 ‘개인의 의지’에 의해 구동된 예외적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중국 바이오 산업의 움직임을 보면 상황은 역전되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라는 뉘앙스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의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Nature, Science, Cell과 그 자매지들을 살펴보면 중국 연구진이 참여한 논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 미국의 연구비 삭감과 포닥 시장의 불안정성이 맞물리면서 “앞으로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박사후연수를 가는 시대가 열릴지 모르겠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가지만, 사실 그것은 단순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연구 인력의 이동과 고급 R&D 생태계의 재편 방향이 점점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의 굴기(屈起)는 더 이상 경제 분야에서만 회자되는 단어가 아니다. 바이오, 특히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중국은 글로벌 경쟁 판도를 실제로 뒤흔들고 있다. 산업 규모, 임상시험 속도, 정부의 정책적 투자, 기술 성숙 모든 면에서 “중국이라서 가능했다”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이 글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면역항암제 산업의 오늘을 점검하고,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한 동력을 해부하며,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지 제안하고자 한다. 기술이 곧 국력이 되는 시대에, 중국의 이 대서사가 한국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짚어보는 작업이다.
Chapter 2. 배경 및 원리
2-1. 면역관문의 발견
필자는 앞선 리포트 <CAR-T>편에서 암과 면역의 관계, 특히 T세포가 암세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여러 차례 다뤘다. 면역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자기(Self)를 지키고 비자기(Non-self)를 배제하는 능력’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공격성이 아니라 균형(balance)이다. 병원체나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의 조직에도 일정한 손상이 발생한다. 염증이 그 대표적 사례다.
염증은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달리 면역반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장치다. 열이 오르고, 붓고, 통증이 생기는 과정은 모두 감염 부위로 면역세포를 빠르게 모으기 위한 생리적 동원령이다. 다시 말해, 염증은 우리 몸이 ‘싸울 준비를 하는 과정’일 뿐이다. 문제는 이 반응이 지나치거나 오래 지속될 때다. 균형이 깨지면 아군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적군에게 가해지는 피해보다 커질 수도 있다.
이 균형을 유지하는 체계 중 하나가 지난 <CAR-T> 리포트에서 소개한 조절 T세포와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고, 또 다른 하나가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이다. 조절 T세포의 제어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사회적 규칙’이라면, 면역관문은 T세포 내부에 설치된 ‘개인 안전장치’에 가깝다. 필요할 때 가속하고, 필요할 때 브레이크를 밟는 식의 자체 조절 시스템인 셈이다.
대표적 면역관문 단백질이 CTLA-4(Cytotoxic T-Lymphocyte Associated Protein)와 PD-1(Programmed Cell Death Protein 1)이다. 일상적 비유를 빌리면, T세포가 몸속을 순찰하는 경찰관이라면 CTLA-4와 PD-1은 그 경찰관이 과잉 진압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근무 규정(checkpoint)이다.
이 장치 덕분에 몸은 불필요한 자가면역 반응을 피하면서도 필요한 만큼의 공격력을 유지할 수 있다. ‘관문(checkpoint)’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치 도로 위의 검문소가 차량 흐름을 지나치게 가속시키지도, 지나치게 차단하지도 않도록 조절하듯, T세포의 활성 역시 이 관문을 통과하며 조절된다.
문제는 이 장치가 암세포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종양 미세환경을 보면, T세포들이 암세포 옆에 존재하면서도 공격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를 추적한 연구들이 밝혀낸 사실은 명확했다.
종양 주변의 T세포는 CTLA-4와 PD-1이라는 내재적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린 상태였고, 암세포는 이 스위치를 ‘켜둔 채’로 유지함으로써 T세포의 공격성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안전장치를 암이 영리하게 역이용한 것이다.

이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은 것이 바로 면역관문억제제이며, 그 출발점은 면역관문 자체의 기능을 규명한 두 학자의 발견이었다.
제임스 앨리슨(James P. Allison)은 CTLA-4가 면역반응의 강도를 떨어뜨리는 ‘브레이크’임을 규명했고[4], 타스쿠 혼조(Tasuku Honjo)는 PD-1을 통해 T세포가 억제되는 기전을 밝혔다[5]. 두 사람의 연구는 브레이크를 해제하면 T세포가 본래의 공격성을 회복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암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업적으로 두 학자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현대 면역항암제 시대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즉, 암 치료는 더 이상 외부에서 약물을 투입해 암을 직접 죽이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 몸이 이미 갖고 있는 방대한 면역 레퍼토리를 다시 작동시키는 치료가 가능해진 것이다.
2-2.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
(A) 면역항암제(Cancer Immunotherapy)
항암치료는 크게 1세대 화학항암제, 2세대 표적항암제, 3세대 면역항암제로 진화해 왔다. 화학항암제는 분열이 빠른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손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탈모·구토·전신 피로 같은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 이어 등장한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의 특정 유전자 변이나 신호 경로만 골라 공격한다는 점에서 치료의 정밀도를 높였다. 그러나 특정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만 적용된다는 한계와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두 가지 한계를 동시에 넘어선 것이 3세대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외부 독성으로 암을 ‘때리는’ 방식이 아니라, 억제된 면역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암을 스스로 제거하게 만드는 치료다. 특정 유전자 변이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암종에서 활용할 수 있으며, 면역체계의 특이성(specificity), 기억능력(memory), 적응력(adaptiveness)을 강화하기 때문에 일부 환자에서는 치료 종료 후에도 항암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즉, 단기 반응에 그치지 않고 장기 생존곡선의 평탄화(long-term durable response)를 만드는 치료 전략이다[6] [7].
이러한 특성 덕분에 면역항암제는 화학항암제가 가진 부작용 부담, 표적항암제가 가진 내성 문제를 동시에 개선하면서 부작용은 낮고 생존기간은 길어지는 혁신적 치료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면역항암제의 근간에는 항체 기술이 있다. 항체는 특정 항원과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능력을 지니며, 항체 의약품은 이러한 결합 특성을 이용해 원하는 표적 신호를 차단하거나 활성화한다(항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CAR-T> 리포트 참고). CAR-T 세포 치료 역시 항체의 표적 결합 부위를 T세포 수용체에 결합시킨 것으로, 항체가 가진 선택성과 T세포의 공격 능력을 결합한 형태다.
현재 면역항암제는 크게 항체 기반 치료제(면역관문억제제, 항체-약물 접합체, 이중·다중항체), 세포치료제(CAR-T 세포 등), 암 백신으로 구성된다. 지난 리포트에서 CAR-T를 다룬 만큼, 이번 글에서는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의 원리와 현주소에 집중해 살펴보고자 한다.
(B)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ICI)
면역관문억제제는 가장 대표적인 면역항암제로서, T세포의 공격력을 떨어뜨리는 억제 신호(면역관문)를 차단해 면역이 스스로 암을 정복하도록 돕는 항체 기반 치료다. 이 치료의 역사는 2011년 CTLA-4를 표적한 여보이(Yervoy)가 전이성 흑색종으로 FDA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2014년 PD-1 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 2015년 옵디보(Opdivo)가 등장했고, 2016년에는 PD-L1 억제제 티쎈트릭(Tecentriq)이 승인을 받으며 면역관문 억제 기전이 항암치료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6].
특히 키트루다는 여러 암종에서 생존기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면역관문억제제의 상업적·의학적 의미를 동시에 증명했다. 2024년 기준 키트루다는 전 세계 의약품 매출 1위에 올랐고, 2023년 매출만 약 300억 달러에 달할 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9]. 최근 비만·당뇨 치료제(Ozempic, Mounjaro)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을 급격히 뒤흔들고 있음에도, 여전히 면역관문억제제(Keytruda, Darzalex)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일 면역항암제가 글로벌 제약 생태계를 재편한 사례이며, 항암제 시장의 우선순위를 기존 화학항암제·표적항암제에서 면역 기반 치료로 완전히 이동시킨 사건이다.

이처럼 면역관문억제제는 다양한 암종에서 치료 전략을 바꾼 플랫폼 기술이자, 현대 항암제 개발의 기준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면역학적 발견이 어떻게 임상적 혁신과 산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C)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
항체-약물 접합체(ADC)는 엄밀히 말하면 2세대 표적항암제에 속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이 항체라는 면역계의 산물이며 일부 ADC에서 간접적·부수적 면역 활성화 효과까지 관찰된다는 점에서 종종 면역항암제의 확장 범주로 함께 논의된다. 본 리포트 역시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ADC를 면역항암제의 범주 안에서 소개한다.
ADC의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항체가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을 선택적으로 인식해 결합하면, 여기에 연결된 고독성 약물이 세포 내부로 전달되어 암세포를 정밀하게 파괴한다.

ADC 개발의 역사는 2000년 Mylotarg 승인으로 시작되지만 기술적 발전은 비교적 더딘 편이었다. 2013년 Kadcyla, 2019년 Enhertu의 등장 이후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성숙하였고, 2019~2022년 사이에만 8개의 ADC가 FDA 승인을 받으면서 기술 발전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25년 1월 승인분까지 포함하면 현재 FDA 승인 ADC는 총 13개에 이르며, 적응증도 암에서 염증성·감염성 질환으로 확장되고 있다[11]. 소위 바이오 기업 중에 ADC 개발을 안하는 회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ADC 개발은 바이오 산업계의 트렌드가 되었다.
기술거래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 이후 글로벌 제약사 간 대규모 기술이전 및 협력 계약이 활발히 체결되었으며, 국내 기업인 리가켐·인투셀·종근당 등도 대형 기술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ADC가 단일 기술을 넘어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핵심 플랫폼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ADC 시장 역시 연평균 12~15% 성장률을 보이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11]. 항체의 표적성, 독성 약물의 강력함, 링커(linker) 기술의 진화가 결합되며 ADC는 면역관문억제제 이후 차세대 항암제의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D) 이중·다중 항체(Bi-/Multi-specific Antibody)
이중·다중 항체는 하나의 항체로 두 개 이상의 표적(또는 세포)을 동시에 인식하도록 설계한 항체공학 기술이다. 보통 항체는 동일한 항원을 인식하는 두 개의 팔을 갖고 있지만,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항체의 팔을 하나씩 조합해 두 가지 표적을 동시에 잡아내는 구조를 만든다. 이 단순한 구조적 재배치가 기존 항체가 구현할 수 없던 새로운 기능성을 열어준다[12].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T세포 인게이저(T Cell Engager, TCE)다. TCE는 T세포와 암세포를 직접 ‘연결’해 T세포의 살상력을 강제로 암세포 쪽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한쪽 팔은 T세포의 CD3를, 다른 한쪽 팔은 암세포가 가진 특정 표적을 인식하도록 설계해, 두 세포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마치 로맨스 코미디 작품에서 주인공 남녀가 각각 한쪽 팔이 같은 수갑에 묶여 꼼짝없이 함께 다니게 되면서 관계가 급진전되는 장면처럼, TCE는 T세포와 암세포를 ‘묶어두어’ T세포가 암세포를 더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12].

암젠의 Blincyto(Blina, CD19×CD3)가 백혈병 치료에서 뛰어난 임상 효과를 보이며 상용화된 TCE 첫 성공 사례였고, 로슈의 Hemlibra(FIXa×FX) 역시 혈우병 치료에서 기존 치료제를 대체하며 이중항체 플랫폼의 가능성을 입증했다[12].
최근 이중·다중 항체가 글로벌 R&D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배경은 더욱 뚜렷하다. 한국바이오협회의 브리핑에 따르면 2025년 체결된 주요 기술거래 상위 20건 중 6건이 이중·다중 특이 항체 플랫폼이었고, 올해 가장 큰 M&A 중 일부도 이 기술에 기반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중항체를 “차세대 항암제의 백본(backbone)”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13], [14].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특허 만료를 앞둔 기존 블록버스터 항체(franchise)를 ‘이중 특이 버전’으로 확장할 수 있는 사업적 매력.
둘째, J&J의 VEGA 2a상 등 유망한 임상 데이터가 쌓이면서 확실한 POC(Proof of Concept)가 확보되고 있다는 점.
셋째, 암젠의 타라타맙(임델트라) 승인으로 고형암에서도 TCE 가능성이 입증되며 플랫폼 전체의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중·다중 항체 기술은 단일항체보다 훨씬 높은 기능성과 정밀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에 글로벌 항암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최근 기술거래 건수는 오히려 감소했지만, 계약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이는 이중·다중 특이 항체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차세대 항암제 개발의 핵심 전략 기술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ADC의 시대가 저물고, 이중항체의 시대가 온다”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실제로2025년을 두고 “이중항체의 해”라는 표현이 공개적으로 사용될 만큼[13], 해당 기술과 시장은 지난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과 성숙을 이루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Chapter 3. 결과와 전망
3-1.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중국 바이오 산업의 성과
(A) 중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 ‘복제약 생산국’에서 ‘글로벌 신약 시장 핵심’으로
중국 바이오제약 산업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복제약 생산 기지에 가깝게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혁신 신약 시장의 핵심 축으로 이동하는 중이다[15]. 특히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산업의 무게중심도 동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제약 시장은 이미 약 2,000억 달러 규모로 커졌고, 2025년에는 3,3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시장만 놓고 보면 2022년 약 323억 달러에서 2030년 663억 달러 이상, 연평균 9.4% 성장해 두 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16].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성장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의 ‘몸집’보다 기술적 구성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중국 상장사 중 바이오·제약 기업의 비중과 시가총액은 꾸준히 상승해 산업의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으며, 과거 소분자·케미컬에 집중되었던 기술 포트폴리오는 항체의약품, ADC, 이중·다중항체,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고난도 바이오 모달리티(이른바 컴플렉스 바이올로직스, complex biologics)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15], [16].
실제로 2024년 글로벌 제약사들이 계약한 대형 라이선스 인 중 상당수가 중국 기업의 컴플렉스 바이올로직스 자산이었고, 이는 중국이 더 이상 ‘후발주자(latecomer)’가 아니라 글로벌 기술 공급원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15], [16].

임상시험 지표 역시 이러한 성숙도를 뒷받침한다. 중국의 임상시험 등록 건수는 201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해 현재는 미국 다음 수준의 대형 임상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을 크게 앞선다. 항암제·면역항암제 분야에서는 다국적 제약사가 글로벌 다지역 임상(MRCT) 설계 시 중국을 필수 허브로 포함할 정도로 환자 모집 속도와 데이터 품질이 높아졌다. 중국이 “임상 수행 국가”를 넘어서 “임상 전략의 중심 국가”로 이동하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이다[15].
생산 인프라도 이 도약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CDMO(위탁개발생산) 시장은 2021년 25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 46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17]. 낮은 비용만이 경쟁력이 아니다. WuXi Biologics, WuXi XDC 등 글로벌 수준의 GMP·규제 대응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항체, ADC, 이중항체, 세포·유전자 치료제까지 ‘엔드 투 엔드(end-to-end)’로 제공하며 세계 공급망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실제로 미국·유럽의 바이오텍 다수가 연구·임상·상업 생산을 중국 CDMO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17].
이 모든 정량·정성 지표를 합쳐 보면, 중국 바이오 산업은 과거의 ‘저가 제네릭 생산국’이라는 인식과는 이미 거리가 멀다. 지금의 중국은 혁신 항암 기술을 개발하고, 대규모 임상 인프라를 운영하며, 글로벌 공급망까지 장악할 수 있는 산업적·기술적 메가 플레이어로 변모한 상태다. 세계 항암 시장이 복잡하고 고난도 모달리티 중심으로 재편되는 지금, 중국은 그 중심 축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설계하는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중국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글로벌 바이오 산업 지형을 다시 그리는 흐름이자,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게는 앞으로의 기술 전략과 산업 정책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B) 면역관문억제제(ICI) 분야에서 드러난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 경쟁력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는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엄격한 임상 기준, 대규모 자본, 그리고 수년간 축적된 항체 공학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잇따라 성과를 내며 기술 경쟁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면역관문억제제(ICI) 분야에서 쥔스바이오(Junshi Bioscience), 이노벤트(Inovent), 그리고 아케소(Akeso)의 사례는 중국 기업의 역량이 단순 추격 단계를 넘어 글로벌 승인·공동개발·라이선스 아웃을 동시에 주도하는 수준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쥔스바이오는 중국 면역항암제 기술이 외부 검증을 넘어 미국 규제 승인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한 상징적 회사다. 자사의 PD-1 항체 토리팔리맙(Toripalimab)은 2023년 미국 FDA에서 희귀질환·특이 암종 적응증 승인을 획득하며 중국 면역항암제가 미국 시장에 진입한 최초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18]. 이는 비단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기업 최초로 미국에서 FDA 승인을 받은 면역항암제를 출시한 사례기도 하다. 중국에서 자체 개발된 항체가 미국 임상을 통과해 승인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중국 바이오가 더 이상 기술 수입 의존적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노벤트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능력을 증명한 대표적 기업이다. 이노벤트와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공동 개발한 PD-1 항체 신타릴리(Sintilimab)는 중국 내 다수 암종에서 승인받았고, 공동개발 모델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15], [18]. 두 회사는 해당 약제를 미국 시장 진입까지 확장하려 했으며, 실제로 릴리는 파트너십 발표 당시 신타릴리의 잠재 시장 가치를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이노벤트의 전략은 단순 약물 판매를 넘어 글로벌 제약사와 플랫폼·임상 역량을 공유하며 기술력을 외부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아케소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체 개발–규제 승인–시장 진입의 전 과정을 100% 독자적으로 수행한 기업이다. 쥔스바이오는 아시아 기업 최초로 PD-1 항체 토리팔리맙을 미국 FDA에서 승인받으며 중국 면역항암제가 글로벌 규제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열어준 ‘선구자’였다. 그러나 진정한 기술 독립의 상징은 아케소(Akeso)다. 아케소는 PD-1 항체 펜풀리맙(Penpulimab)을 설계–임상–허가–상업화까지 전 과정에서 단 한 번의 라이선스 아웃 없이 수행해, 중국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의 우산 없이도 미국 FDA의 엄격한 351(a) 경로를 통과할 수 있음을 실적으로 증명했다[19].
특히 펜풀리맙은 중국 단독 3상 임상 데이터만으로 Project Orbis 가속 심사를 통과했고, 미국 판매권 또한 100% 아케소가 보유해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기술뿐 아니라 사업 주도권까지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정표가 되었다. 이는 쥔스바이오가 미국 기업(Coherus)과 공동으로 시장에 진입한 방식과 비교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기술 수출”의 단계에서 머물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완전 독자 개발로 선진 규제를 돌파하고 시장에서 자주적 위치를 확보하는 시대, 즉 ‘중국산 바이오 기술의 완전한 주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항목 | 쥔스바이오 (Toripalimab) | 아케소 (Penpulimab) |
|---|---|---|
| FDA 신청 주체 | Coherus Biosciences | 아케소 자체 |
| 미국 판매권 | 20% 로열티 | 100% 보유 |
| 임상 데이터 | 혼합 (미국 보완) | 중국 단독 3상 |
| Project Orbis | 미참여 | 최초 중국 기업 참여 |
쥔스바이오와 아케소의 미국 시장 진입 비교표
이 세 기업의 성과는 개별 기업 수준을 넘어 면역관문억제제 분야에서 중국 바이오 산업이 축적한 기술경쟁력의 총합을 보여준다. 중국은 현재 수십 개의 anti-PD-1/PD-L1 후보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라이선스 아웃·공동개발 계약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중국 면역항암제 관련 기술이전 계약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서구 제약사가 중국산 PD-1 자산을 사들이는 사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항암제 시장의 핵심 중 핵심이라 불리는 분야다. 그 한복판에서 중국 기업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실적을 쌓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이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 글로벌 항암 기술의 동반 설계자이자 주요 경쟁자로 부상했음을 시사한다.
(C) ADC와 이중항체: 차세대 면역항암제 시장을 향한 중국의 기술적 도약
지난 10여 년간 면역항암제 시장은 PD-1/PD-L1 중심의 면역관문억제제(ICI)가 주도했다.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만든 성공 신화는 전 세계 제약사가 면역관문 억제 플랫폼을 따라가도록 만들었고, 중국 바이오 기업들도 이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혀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시장의 흐름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차세대 면역항암제의 승부처는 더 이상 ICI가 아니라, 고정밀·고난도 기술이 결합된 ADC와 이중·다중특이 항체다.
복잡한 종양환경을 정밀하게 공략하고 난치성 암종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는 고정밀·고난도 플랫폼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면역세포를 직접 활성화하거나 특정 암세포에 정밀하게 약물을 전달하는 이들 기술은 기존 항체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앞으로 5~10년간 면역항암제 시장의 성패를 좌우할 차세대 플랫폼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새로운 경쟁의 중심에서 중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속도로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지표는 중국의 기술 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에 따르면 2024년 중국→서구 기술거래 48건 중 ADC·이중항체·TCE가 전체의 44%, 지급된 업프런트 금액 기준으로는 66%를 차지했다. 즉, 서구 제약사가 중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기술이 이제는 단일항체가 아니라 ADC와 이중항체라는 뜻이다[16].

둘째, 중국이 현재 개발 중인 이중특이 항체 파이프라인은 130개를 넘어 글로벌 1위이며, ADC 파이프라인 또한 100개 이상으로 미국 다음 규모다. 수량뿐 아니라 임상 1·2상 진입 비율, 글로벌 파트너십 증가 속도에서도 중국은 이미 ‘추격자’가 아닌 투 톱 플레이어로 이동하고 있다[15], [16].
ADC 시장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는 단일 개발 기업이 아니라 WuXi XDC 같은 플랫폼 기업이 더 적합하다[17]. WuXi XDC는 이른바 중국 ADC 생태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실세라 불린다. WuXi XDC는 항체·링커(linker)·독성 약물(payload) 합성부터 대규모 GMP 생산까지 ADC 전 주기(value chain)를 수직 통합한 중국 유일의 CDMO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 인프라가 바로 중국 ADC 산업의 국제 경쟁력의 핵심 토대다. ADC는 개발만큼이나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고, 실제로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으로부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배경에는 WuXi XDC의 상업규모 생산 능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회사의 존재는 단순 지원 역할을 넘는다. 중국 고성장 모달리티 중 ADC가 기술이전 업프론트 비중의 약 27%를 차지하는 데에는 WuXi XDC의 제조 인프라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16].
중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유럽 바이오텍도 상용화 파트너로 WuXi XDC를 활용하면서, 중국은 ADC 생산 역량에서 이미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지점이 되었다. 즉, 중국의 ADC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성공이 아니라 국가적 기술 기반의 구축이며, 그 중심에 보이지 않는 실세 WuXi XDC가 자리잡고 있다.
이중항체 분야에서는 앞서 언급된 아케소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아케소가 중국 항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펜풀리맙을 위시한 자주성을 기반으로 이중·다중특이 항체 분야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혁신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케소의 카도닐리맙(Cadonilimab)은 세계 최초로 승인된 PD-1/CTLA-4 이중항체로, 중국이 단순한 모방·기술추격 단계를 넘어 새로운 항체 아키텍처를 스스로 설계하고 상용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 사례다[20]. 중국 기업 중 이중항체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곳은 많지만, 플랫폼 독자성·임상 추진 능력·규제 대응·시장 확대 속도를 모두 갖춘 기업은 아케소가 거의 유일하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대로 중국→서구 기술거래에서 이중항체·TCE의 비중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특히 선호하는 중국 기술이 바로 다중특이 항체 플랫폼이다[16].
아케소는 이러한 흐름의 최전선에서 기술수출·공동개발을 가장 활발히 이끄는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펜풀리맙(면역관문억제제, 단일항체)이“중국 기술의 독립성”을 상징했다면, 카도닐리맙(이중항체)은 “중국 기술의 혁신성”을 상징하는 셈이다.
이러한 중국 바이오 기업의 성과는 글로벌 라이선스 거래의 흐름에서도 드러난다[21]. 올해 체결된 대형 제약바이오 라이선스 딜 상위 20건 중 6건이 이중·다중항체였으며, 특히 상위 10건 중 7건이 중국 기업의 기술에서 나왔다. 이는 글로벌 빅파마의 관심이 ADC에서 더 고난도 모달리티인 이중항체로 이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사실상 독주 구도를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중·다중항체는 기존 단일항체 블록버스터를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기술이자, 초기 임상 신호만으로도 빠른 가치 실현이 가능해 빅파마의 ‘대형 베팅’을 이끌고 있다. 그 결과 전체 라이선스 딜 수는 줄었지만, 이중항체 딜 규모는 오히려 커지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이전의 중심축이 중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면역관문억제제가 열어젖힌 1세대 면역항암제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ADC와 이중·다중특이 항체는 글로벌 면역항암제의 차세대 주력 플랫폼이자 기술적 분기점이다. 그리고 이 분기점에서 중국은 WuXi XDC가 구축한 ADC 생산·기술 인프라, 아케소가 증명한 혁신 항체 설계 능력을 양축으로 면역항암제 2.0 시대의 핵심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재편할 수 있는 변화다.
3-2. 중국 바이오 산업 성장의 구조적 동력과 우리의 전략적 질문
(A) 세계 연구지형을 다시 쓰는 중국의 바이오 R&D
중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떠받치는 첫 번째 축은 R&D 그 자체다. 숫자로만 봐도 위상 변화가 분명하다. KISTEP 분석에 따르면 합성생물학, 백신, 생물학적제제 제조, 바이러스 공정 등 7대 바이오 핵심기술 가운데 최근 5년 논문 기준 선도국이 중국인 분야가 절반을 넘어섰고, 미국이 독점하던 지위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15]. 중국은 더 이상 값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기술의 출발점이자 설계 지점을 점유하기 시작한 셈이다.

고임팩트 학술지 지표는 중국 R&D의 위상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다. 최근 5년간 자연과학·의생명 분야에서 중국의 상위 10%·1% 피인용 논문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3년에는 세계 1위에 올랐다[22]. 네이처 인덱스에서도 중국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생명·건강과학 분야에서도 격차를 빠르게 벌리고 있다[23], [24]. 여기에 더해 중국은 연간 SCI급 국제 학술지 247종, 약 4만 편의 논문이 순환되는 자국 중심의 학술 생태계를 구축하며 연구 생산 시스템 자체를 내재화했다[25].
2025년 기준 세계 상위 1% 고피인용 연구자 수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고급 인력 풀에 있어서도 미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경쟁 상대가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26]. 필자 역시 연구자로서 주요 학술지의 최신호 알림을 받아보는데, 체감상 논문의 약 30%가 중국 연구진의 성과다. 새로운 호가 나올 때마다 중국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흐름을 보면, 중국의 연구 경쟁력이 이미 글로벌 학계의 주도권을 확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흐름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소는 이른바 ‘역(逆) 브레인드레인(Reverse Brain Drain)’ 현상이다. CNN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연구비 축소, 중국계 연구자에 대한 규제 강화, 첨단산업 경쟁 심화로 인해 미국에서 고급 과학기술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그 최종 도착지는 유럽이나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다[27].
중국 대학·국가 연구기관·빅테크·바이오 기업들은 파격적인 연구환경·예산·고용 안정성·장비 인프라를 제시하며 이 인재들을 적극 흡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연구 인력 증가’를 넘어, 중국 R&D가 글로벌 인재를 빨아들이는 ‘인재 싱크(human talent sink)’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저널 품질 논란에도 불구하고, 학술 생산력·고급 연구자 풀·인재 유입 구조가 결합되면서 중국은 세계 R&D 지형을 실질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규모와 깊이를 확보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R&D 투자는 이러한 성장의 또 다른 축이다. 2024년 중국의 R&D 투자액은 약 3조 6천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8.7% 증가했고, GDP 대비 비율도 2.69%로 EU 평균을 상회한다[22], [27]. 총량 기준으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일본·독일을 크게 앞선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기초연구 예산의 꾸준한 확대다.
같은 시기 미국은 예산 압박과 기술 규제로 인해 연구비 증가율이 둔화되었고, 중국계 연구자들에 대한 규제 강화로 특정 인력이 중국 연구기관·대학·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 R&D 기반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22].

이러한 변화는 산업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체감된다. 글로벌 임상시험 데이터 분석 결과, 최근 중국 기업들의 임상시험 개시 건수와 R&D 투자 속도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항암·면역항암제 분야에서는 이미 미국 다음 수준의 임상 규모를 형성했다[15]. 특히 최근 중국의 임상시험에서 낮은 임상 비용과 짧은 임상 시간이 주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사전 심사를 통해 절차를 효율화하여 2상까지 중국 내 임상을 완료한 후 글로벌 제약사에서 라이선싱을 해 임상 3상을 바로 진행할 수 있다. 즉, 복제약 중심 국가에서 글로벌 기술 수출국, 나아가 임상시험·R&D 거점으로의 전환이 실제 산업 지표에서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28].
결국 중국 바이오 R&D의 약진은 단순히 “논문이 많다”는 차원이 아니다. 고임팩트 학술지 점유율, 대규모 R&D 투자, 적극적인 인재싱크, 자국 학술 생태계 구축, 글로벌 임상 확장이라는 다섯 축이 서로 연결되며 ‘지식 생산–기술 개발–산업 성과’가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중국은 바이오 분야에서 단순한 기술 추격자가 아니라, 지식과 기술의 기준을 정의하는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중국 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분석할 때, 바로 이 구조적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B) 중국 바이오 산업의 비약, 국가 만든 시스템의 힘
중국 바이오 산업을 움직이는 힘은 단순한 R&D 투자 확대만이 아니다. 중국은 바이오를 미래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산업의 구조 자체를 국가가 직접 설계하는 독특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 왔다. R&D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0.9%에서 2.7%까지 끌어올린 지난 20년의 변화는 이 산업 전략의 토대일 뿐이다[15]. 실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그 위에서 작동하는 인재 육성 시스템, 의료보험 지형의 재편, 규제 체계의 급진적 현대화, 그리고 국가 주도의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이다.
중국 바이오 산업 성장의 출발점에는 철저히 설계된 인재 전략이 있다. 1994년 중국과학원의 ‘백인계획’을 시작으로 ‘천인계획’, ‘국가우수청년학자과학기금’ 등 고급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연속적으로 추진되었고, 2014년에는 인재 육성이 국가 기술혁신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되면서 ‘중국제조 2025’와 5개년 계획 속에 막대한 정부 재원이 투입됐다[15]. 2012~2017년 사이에만 약 25만 명의 해외 중국 유학생이 중국으로 복귀했고[29], 이 중 약 7천 명은 세계 상위 수준의 연구자를 의미하는 핵심 인재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미국의 연구비 축소와 비자 규제 강화가 겹치며 글로벌 제약사·학계 출신의 고급 인력이 중국 기업·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중국 바이오 창업가 다수가 다국적 제약사 경력을 보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건비는 미국 대비 절반 수준이지만 인재의 질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AI·신약개발·항체공학 등 전략 분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집중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중국은 이제 세계 과학기술 인력이 흘러들어가는 거대한 ‘인재 싱크(human talent sink)’로 기능하고 있다.
의료보험 구조 역시 산업 성장의 강력한 동력이다. 중국은 2017년부터 항암 항체신약을 대규모로 국가보험(NRDL)에 편입하면서 신약 시장 진입 장벽을 급격히 낮췄다[15], [29]. 보험 등재 이후 약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60~70%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 처방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예컨대 중국바이오제약의 표적항암제 안로티닙은 허가 후 5개월 만에 보험 등재가 이루어졌고, 이후 매출이 수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29]. 국가가 거대한 구매자로 등장하면서 신약 기업들은 ‘보험 등재 = 시장 진입’이라는 확실한 인센티브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임상 파이프라인 확대와 기술 혁신을 촉발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
규제 개혁 또한 중국 바이오 산업을 완전히 다른 궤도로 이동시킨 결정적 변곡점이다. 중국은 2017년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에 가입한 뒤, 의약품 심사·허가 체계를 글로벌 기준으로 빠르게 재편했다. 그 결과 임상·품목허가 심사 기간은 과거 2~3년에서 평균 9개월 수준까지 단축되었고[29], [30], 해외 임상 데이터도 수용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글로벌 임상 전략과의 연동이 용이해졌다. 국가가 규제 문턱을 낮춘 것이 아니라, 속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혁신에 불리한 구조적 장벽을 제거한 것이 중국 산업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국 바이오 산업 전략의 핵심은 바이오 클러스터를 국가가 직접 설계한다는 점이다[15], [31]. 미국과 한국은 각각 보스턴과 송도를 중심으로 바이오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보스턴이나 송도처럼 민간 생태계가 먼저 형성되고 정부가 뒤늦게 인프라를 보강하는 방식과 정반대다. 중국은 5개년 계획, ‘Made in China 2025’, ‘바이오경제 발전계획’을 통해 400개 이상의 바이오 특화 파크를 계획 단계부터 국가 주도로 조성했다[15].
이는 1960~70년대 한국이 울산공업단지·포항제철을 국가가 먼저 설계한 뒤 기업을 유치했던 박정희 정부식 모델과 유사하다. 베이징 BTH, 상하이 장강 Pharma Valley, 광둥 GBA 등은 연구개발·임상·GMP 제조·조달·수출까지전 밸류체인을 한 지역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5]. 지방정부 간 과열 경쟁도 과거 울산·포항의 산업단지 경쟁을 연상케 한다. 토지 무상 제공, 세제혜택, 우선심사 패키지가 결합된 이 체제는 단순한 부지 공급을 넘어 산업정책 자체가 ‘풀 패키지형’으로 작동하는 국가 주도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 네 가지 축—인재·보험·규제·클러스터—는 각각 독립된 정책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중국 바이오 산업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연동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인재가 혁신을 만들고, 보험이 시장을 열고, 규제가 속도를 보장하고, 클러스터가 비용과 공급망을 완성한다. 중국 모델의 본질은 바로 이 ‘전(全) 시스템 기반의 성장 메커니즘’에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구조는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서 중국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전략적 중심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C) 한국과 중국의 기술지형 비교: 협력·경쟁·대응 전략의 재정의
중국 바이오 산업의 부상은 한국에 ‘경쟁자 하나의 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한국이 마주한 현실은 중국을 배제한 전략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산업 환경이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한국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기술 수출과 공동개발 계약을 들여다보면, 중국은 더 이상 주변 변수가 아니라 직접적인 파트너이자 가치 창출의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15], [32]. 중국을 이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것인가가 한국 바이오 전략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미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2020년 이후 한국 바이오 기업이 체결한 기술이전·공동개발 계약 가운데 중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거래 비중은 빠르게 증가했고, 일부 해에는 전체 해외 기술수출 계약의 30% 내외를 차지했다[32]. 단순한 초기 파이프라인 이전이 아니라, 임상 단계 자산을 포함한 중대형 계약도 늘고 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은 중국 기업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중국 내 대규모 임상 인프라와 빠른 환자 모집 속도를 활용하고, 글로벌 허가를 염두에 둔 데이터를 확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33]. 이는 한국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임상 비용과 시간을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구조적으로 보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 사례도 적지 않다. 셀트리온은 중국 기업과 ADC·다중특이 항체 분야에서 공동개발 및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중국의 항체 플랫폼과 임상 역량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34]. 에이비프로바이오, 알테오젠 등도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중항체·플랫폼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21], [34]. 이 과정에서 중국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기술 검증과 확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실험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 내 NRDL 편입 이후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처방량과, 다국적 제약사가 인정하는 임상 데이터 품질은 이러한 협력의 실질적 가치를 뒷받침한다[33].
특히 최근 글로벌 라이선스 시장에서 이중·다중항체 거래의 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기업에게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차세대 모달리티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으로 기능하고 있다[33], [34]. 올해 글로벌 대형 제약바이오 라이선스 딜 상위 20건 중 이중·다중항체 관련 거래가 6건을 차지했고, 상위 10개 거래 가운데 7개가 중국 기업의 자산이었다는 점은,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 기술을 사실상 우회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도 이미 중국을 향한 기술수출과 공동개발을 통해 전략적 포지션을 재정렬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중외제약이다. 중외제약은 자사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중국 제약사에 기술수출하며, 중국 현지 임상과 허가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입을 모색하는 전략을 택했다[32]. 이는 단순한 판권 이전이 아니라, 중국의 대규모 임상 수행 능력과 빠른 개발 속도를 활용해 약물의 가치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다. 중외제약 사례는 한국 기업이 중국을 ‘최종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진출을 위한 중간 기착지이자 증폭기(amplifier)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에서 임상적 유효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입증한 파이프라인은 이후 글로벌 제약사와의 추가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협력은 선택지가 아니라 구조적 전제가 되었다. 중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지형 위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대결’이 아니라 역할 재정의와 시스템 재조립이다. 중국이 강점을 가진 대규모 임상 수행 능력과 개발 속도를 레버리지로 삼고, 한국은 글로벌 규제 대응 역량, CMC 고도화, 병용 전략 설계, 장기적 신뢰와 품질을 무기로 삼는 분업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수요자 체감형 규제 혁신과 기술·인력·자본을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엮고, 성과평가를 논문·특허 중심의 양적 지표에서 벗어나 실패를 감내하는 기여도 중심의 종합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자본조달 역시 상장 중심의 단선 구조를 넘어, 특정 임상 자산을 분사해 해외 자본과 규제 경로를 동시에 확보하는‘뉴코(NewCo)’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기존 바이오/제약사가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이나 특정 기술을 분리하여 별도의 독립 회사(New Company)를 설립하고, 여기에 외부 투자 유치 및 개발을 집중하여 신약 개발을 가속화하고 상업화하는 혁신적인 사업 구조)을 제도권 안에서 실험할 필요가 있다[15].
동시에 중국의 강점을 위협으로만 소비하지 말고, 다중항체·ADC·TCE 등 차세대 모달리티에서 중국이 선점한 속도와 임상 규모를 오픈 이노베이션의 학습장으로 활용하되, 핵심 제조와 공급망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다중화 전략으로 병행해야 한다. 결국 한국의 답은 “중국과 싸우겠다”가 아니라, “중국이 바꾼 게임의 룰을 읽고 우리의 산업 OS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이 결단의 깊이와 실행력이 중국 바이오 굴기 이후 한국 바이오 산업의 성패를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다.
연구자 의견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연구자가 체감한 한국 바이오의 구조적 한계
중국 바이오 산업의 굴기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기적이 아니다. 산업 구조의 대대적인 재편도 있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재 육성·R&D 투자·사회적 동기 구조를 수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렬한 결과다. 문제는 한국이다. 중국과 비슷한 시점, 어쩌면 더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 앞에 서 있다. 현장에서 연구자로 일하며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시스템이 향하는 방향이다. 무엇보다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개인이 갖는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배워야 할 점은 냉정하게 배워야 한다. 필자 역시 과거에는 중국 연구에 대해 결과 조작이나 상호 인용을 통한 편법적 성과 부풀리기 같은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연구의 질을 가려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뒤 최근 중국의 연구 성과를 보면, 국가적 색채를 걷어내고 보았을 때 질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연구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첫째는 인재 육성과 연구 환경에서의 격차다. 필자는 KAIST 학부 출신으로, 현재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학부 시절만 해도 주변에서 현역 군복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학생보다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희망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체감상 남학생의 10% 정도만이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축소되고, 이른바 2+1 제도(2년 복무 후 박사 학위 취득, 이후 1년 추가 복무)가 본격 시행되면서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해외 박사후연수에 제약이 생기고, 제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전문연구요원의 실질적 매력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 결과, 학부 시절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이는 필자가 KAIST에 10년 가까이 몸담으며 직접 체감한 변화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둘러싼 축소·폐지 논란이 반복되는 동안 연구 현장에는 분명한 신호가 전달됐다. “이공계 연구는 언제든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교수 사회와 언론이 이 제도 변화가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과 대학원 인력 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에 몰입해야 할 시기에 병역과 제도 리스크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환경은 장기적인 연구 커리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중국이 수십 년에 걸쳐 역(逆)브레인드레인을 설계하며 인재를 끌어모으는 동안, 한국은 스스로 인재 이탈을 자초하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R&D 투자 규모와 속도의 격차다. 중국의 2024년 R&D 투자액은 약 715조 원으로, 같은 해 한국 정부 전체 예산 규모를 넘어섰다. 2023년 기준 중국의 R&D 지출은 10년 만에 2.6배 증가했고, 증가율은 OECD 평균과 미국을 압도한다[22]. 글로벌 R&D 투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27%에 이르며, 비(非)OECD 국가 R&D의 대부분을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민간 R&D 집약도는 높지만, 정부 R&D 예산은 정체되거나 삭감 논의가 반복된다[8]. 연구자로서 체감하는 차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이번에 실패해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신호가 제도적으로 전달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압박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 차이가 누적되면 연구자들이 선택하는 문제의 크기와 도전의 깊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사회적 풍조, 특히 의대 쏠림과 의사과학자 양성의 구조적 한계다. 서울대 공대와 KAIST에서 의학계열로 이동하는 학생 수가 급증했고, 최근 3년간 수백 명이 자퇴했다는 데이터는 상징적이다. 의사 수는 늘어가지만, 정작 바이오 혁신의 핵심 인력인 의사과학자는 거의 길러지지 않는다. 의대 졸업생 중 기초의학·의과학으로 진출하는 비율은 1%대에 불과하다. 필자가 재학 중인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의사 출신과 이공계 연구자가 함께 융합 연구를 수행하며 의사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 기관이다. 실제로 연구에 대한 동기가 확고해 임상을 내려놓고 연구에 전념하는 의사과학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전체의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을 보면, 임상 위주의 의사에게 제도적 혜택이 배분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즉, 대상이 적절하지 않은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의대 열풍에 맞추어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 역시 구조적 개편을 통해 ‘진정한 의사과학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상당수가 의사-과학자(physician-scientist) 혹은 의학 배경을 가진 연구자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대 진학률이 높다면 적어도 바이오 혁신에서는 앞서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임상 중심으로 고착된 한국 의료 구조에서는 연구의 비중이 극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정리하면, 한국 바이오의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재를 붙잡지 못하는 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R&D 구조, 도전보다 안정을 보상하는 사회적 정렬의 문제다. 중국은 이 세 축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했고, 한국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놓았다. 연구자로서 체감하는 위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중국을 따라잡기 위한 해법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라, 중국이 수십 년에 걸쳐 실행한 단계적 혁신을 우리 현실에 맞게 다시 설계할 용기다. 인재·투자·사회적 동기를 다시 맞추지 않는다면, 한국 바이오의 미래는 개별 기업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